어느 저녁 세수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세면대 앞에 비스듬하게 서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샤워하기 귀찮아 얼굴만 간단하게 씻고 나오자는 생각으로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틀어 세수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세수조차 비스듬히 서서 하고있던걸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얼굴을 씻는 일이었다.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인생을 비스듬히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아이를 위한다면서 밖에서 돈만 벌어오는 부모 같다고 생각했다. 정작 아이는 집에서 밥을 해주고, 다정하게 돌봐주는 부모가 필요한데 말이다. 내가 제아무리 바깥 생활을 잘 해도 정작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널부러진 옷과 이불, 악취나는 쓰레기통, 물때가 낀 화장실이 나를 모욕한다면, 그 인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물을 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2020년 10월 어느 저녁
(이날 이후로 나는 가급적 방을 깨끗이 치우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