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2024
XY문제라는 개념이 있다. 문제 X에 대한 해결책 Y가 있는데, 문제가 아닌 해결책에 대해서만 질문할 경우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해결책 Y에 생긴 문제를 해결해도, Y가 반드시 문제 X를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처가 났을 때 그 상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주변 약국의 위치를 묻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병원에 가야하는 상처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약국의 위치를 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이 XY 문제의 계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당장 눈 앞에 목메는 일이 해결책 Y라면 ‘왜’라는 딱지를 붙이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문제 X가 나타난다. 이 문제 X에 다시 ‘왜’를 붙이면 이 문제도 더 상위 문제의 일개 해결책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나는 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가? 취업하려고. 왜 취업을 하려고 하는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이 문제 계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인생의 의미라는 뿌리 문제에 부딛힌다. 나는 왜 존재하고, 생을 지속하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분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뿌리 문제는 중요하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이 멘탈 모델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해결하려는 모든 ‘문제’들이,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일개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관점의 전환이 안 되면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수 많은 삶의 방식 중 한 가지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고, 과도한 자원을 쏟으며, 정말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고시 낭인 문제부터 시작해 학력에 대한 집착, 특정 커리어 패스에 대한 숭배,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까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더 상위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너무나 많다. 사실 이는 개인을 넘어 집단 차원에서도 발생하는 문제다. 예를 들면 모두가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Y에만 미쳐있는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다.
물론 이런 관점 전환도 너무 잦으면 독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만큼은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긴 시간 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고 마음이 지친다면, 한번씩은 꼭 돌아봐야 한다. 내가 절실히 붙잡고 기어오르는 이 나무가 사실은 일개 나뭇가지에 불과하지 않은지.